70년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'인권개선' 요구를 거듭했다.
한국측으로부터 별반응이 없자 서울로 직접 날아와 박 대통령을 만났다.
박 대통령에게 "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빼겠다"고 으름장을 놓았다.
박 대통령이 "마음대로 하시오.
대신 다시는 한국의 인권이나 안보문제에 간섭하지 마시오"라며
역공을 펴자 카터는 두 손 들고 돌아갔다.
1981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쿠테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
반감을 가지고 있던 레이건은 전 대통령에게 4가지 '뒷거래'를 은밀히 요구했다.
첫째, 핵개발을 하지 말 것.
둘째, (한국인이 교주인)미국내 모 종교단체를 한국 정부가 지원하지 말 것.
세째, (이미 독일에 15억 달러를 주고 계약까지 한)한국 전화 현대화사업에 미국업체도 선정 할 것.
넷째, 광양제철소 건설사업에도 미국 업체를 선정할 것 등이었다.
레이건 요구가 워낙 강해 세째, 넷째 항목을 거절하는데 진땀을 뺏다는 것.
이처럼 한미정상회담 뒤에는 뒷얘기가 무성하다.
노무현 대통령시절 한미정상회담도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.
"반(反)미주의면 어떤가"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시작된
노 대통령의 반미성 발언으로 밉보였기 때문이었다.
북핵을 둘러싼 한미공조와 관련 "미국과 견해가 다른 것은 달라야 한다",
"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미국과 다른 얘기도 할 수 있다",
"한미간 입장이 똑같을 수 없는 상황에서 쉬쉬하는 것보다 공개적으로
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",
"미국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백만 믿겠다
이거 자주국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 있느냐 " 등
일련의 감정적 반미 주장들이 한미간의 외교적 갈등을 부채질했던 것이다.
그러나
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한미정상회담은 순풍에 돛단 듯 화기가 넘쳐 보인다.
부시와의 회담때도 서로 '친구'라 부르며 과시하고
이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시가 구원투수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.
최근 이 대통령과 오바마의 정상회담에서도 세번이나 포옹을 하는 등
양국정상간 우애를 확인시켰다.
오바마는 방명록에 '우리 우정이 영원하기를…' 남기고 갔다.
MB의 부드러운 외교가 한미정상외교사를 새롭게 수놓고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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